‡ 저에게 언제 구원을 받았냐고 물어보면!

[ 정연수 ]

누가 저에게 구원을 언제 받았냐고 물어보면 2000년 여름 집회에서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한 5년이 지나고서 부터 2003년 여름 전도 집회에서 받았다고 합니다.

이상합니다. 만약 2000년에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면, 2003년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해야 하는데 무언가 시간이 뒤죽박죽이고 두루뭉술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전 제가 구원을 언제 받았는지 조차 제대로 기억 못할 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등한시 하였습니다.

한편, 저는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 모든 삶에 하나님과 교회가 관여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가족이었고, 구원은 가족이 되기 위한 조건이었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저는 가족 구성원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구원의 유무로 제 삶의 불안함과 두려움이 결정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구원 받는 과정과 간증은 저를 초조하게 만들었고, 믿음의 정의와 믿음에 대한 저의 감정은 변질되어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주님은 가족이 되길 갈망한 저에게 많은 기회(계기)를 주셨습니다. 이 수많은 계기들은 하나로 규정하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떤 계기가 저를 눈뜨게 했다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의심과 변질되어 가는 믿음은 이 계기들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과 감사함으로 덮이게 되었고 또, 저만의 믿음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구원 하나 만을 강조하는 문화와 환경은 주님의 사랑을 강압적이며 조건 적인 사랑으로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봉사를 왜 해야 하는지, 이 고단함을 동반한 인내를 왜 견뎌야 하는지 에 대한 답이 없던 저는 편하고 자극적인 세상에 저를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제 마음을 공고히 하던 때도 있었지만, 훈련 받지 못하고 교제하는 방법을 모르는 저의 신앙은 욕망에 사로잡힌 제 육신에 삼켜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제 죄가 사해 졌고, 다시 부활하심으로서 제가 거듭났다. 그리하여 저는 지옥을 가지 않는다”

이 명제만 간직한 채 세상에서 육신의 삶에 충실하였습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분노하고 더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욕망 만을 탐하던 저에게 이 끝없이 반복되는 욕망이 지겹다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깨닫게 되는 세상의 이치가 하나님이 제게 알려주시는 지혜와 몹시 닮았다는 생각을 문뜩 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읽지도 않던 성경을 읽어보기도 하고, 가족들과 이와 관련된 교제를 하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소유를 떠나서 지키고 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키고 싶은 것들이 저를 떠날 때 마다 가슴이 아팠고 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잃고 나서야 그것들의 소중함을 자각했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감사함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성령이 제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처음으로 깨닫고, 스스로 세운 우상을 하나씩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은 제 의지가 아닌 하나님께서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기도했으니까요.

현재는 하나님의 문화,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을 알아 가고 깨닫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지금도 매일매일 저를 죽이고 주님께 저를 드리는 과정 속에서 주저하고 부담스러움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못하더라도 지금 할 수 있을 때 하나라도 더 해보자는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저를 하나님께 온전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말씀을 듣고 접하였지만, 아직도 특정 말씀이 저에게 와 닿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저를 설명할 수 있는 말씀도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말씀과 지혜를 구해서 그 말씀을 세워야겠다는 다짐도 들지 않습니다. 다만, 수많은 계기와 계기 사이에 적용되는 수많은 말씀들이 모여서 저를 살아가게 하고 있기에 혹시나 앞으로 그런 말씀이 생긴다면 다시 한 번 간증을 통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긴 내용이지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