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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중 형제


‡ 1978년 10월의 어느 날!!

[ 김이중 ]

내 나이 12살 세상의 이치와 내가 왜 이 세상을 살고 있는지 조차도 전혀 의식치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뛰어 놀던 것에만 열중하고 있을 무렵 우리 집에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의 손길이 내밀어졌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직도 그때의 일들이 생생하게 엊그제의 일처럼 느껴지는데 “살같이 빠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내 평생소원 이것뿐) 라는 어머니께서 자주 불렀던 찬송가 가사처럼 세월은 살같이 빨라 어느덧 35년을 훌쩍 넘겨 버렸다 그 당시의 분위기로는 나의 청소년시기와 청년시절은 오지 않고 끝날 것만 같았었는데 지금 한 자매를 만나 결혼을 하고 또 아이들도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 그때의 나보다 더 많은 나이가 되어있는 40후반의 장년의 정점에 와 있음이 사실 믿기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 그때를 회상해보면 그 당시의 역사는 너무도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었고 세상이 얼마 남지 않는 시한부적 상황 속에 처해 있어 나의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는 가슴 졸이며 보낸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다.
내가 태어나 살았던 전남 구례의 우리 집은 두메산골은 아니었어도 아직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는 가정도 있었을 정도로 어두웠고 도로며 통신 등이 지금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그런 곳이었었는데 지리산 자락의 한 농촌 시골 마을에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빛이 우리 집에 비춰주셨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도 신비롭고 얼마나 축복된 일이었는지 새삼 이글을 쓰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어떻게 이렇게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이 비췄었을까 작은 시골 마을의 한 가정에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옴으로 해서 조용하던 시골 교회에 파장을 일으키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온순하고 순종적이던 우리 집 사람들은 온갖 비난과 따돌림과 계속된 회유 속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급기야는 교회를 나가지 않기로 작정하고 어머니께서 두 누님의 주일학교 공과 책을 목사님께 돌려주며 당신은 물론 딸들도 앞으로는 나오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셨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내가 크고 난 후 듣게 되었다.
지금은 주님의 보호 아래 잠자고 계시는 나의 육신의 어머니, 난 그 어머니 품에서 언젠가 부터 우리 집에 함께 살게 되신 분의 성경 얘기를 매일 저녁 듣게 되었고 또 하루를 마감하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어른들은 그 하나님 얘기에 심각한 표정 되었다가 또 밝아졌다 했지만 나의 주목을 끌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간이 1년쯤 되었을 무렵 내게도 슬며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666, 휴거, 7년 대환난 등등 처음엔 어른들에 국한된 얘기겠지 하며 어머니 품에서 듣다 잠들다 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문제로 다가왔었고 그중 제일 무서웠던 것은 휴거였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없어진다는데 어린 나로서는 어느 것 보다도 무서운 일이었던 것이다. 학교를 갔다 오면 어머니를 찾았고 집에 안계시면 밭으로 논으로 찾아다니며 안도해야 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나중에 커서 <휴거>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 속의 어린 여자아이가 꼭 나와 같았음을 공감했었다.
이런 두려움 속에서 나도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떠듬떠듬 성경을 읽어가며 성경이 내가 늘상 봐왔던 일반적인 책이 아님과 세로로 씌어져 있어 읽기 힘든 책 속에는 그 무언가의 사실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책속의 하나님이 실존하는 분이시며 전설과 신화 속 이야기인줄만 알았던 노아홍수와 이스라엘 민족의 바다를 가르고 홍해를 건넌 이야기들 그것들의 증거물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에 어린 나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문제는 이때 부터였다. 이런 것들이 분명한 사실이라면 성경이 사실이고 그리고 성경 속 지옥과 천국이 있음도 사실이며 그 무서운 지옥의 불구덩이는 어린 나에게 크게 무서움으로 엄습해 왔었다. 죄인들이 가는 곳이 지옥이라는데 내게도 분명 가슴을 콩닥거리게 했던 죄가 있었었다.
어린 나에게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과학적인 물건들이라면 무엇이든 관심사였고 그중 자석은 내게는 너무도 신비롭게 다가오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눈에 띄는 대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 시골 동네에서 모아봐야 얼마나 모았겠는가, 기껏해야 스피커의 말굽자석, 자전거 발전기의 둥그런 자석 등등 종류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친구가 납작하고 길쭉한 처음 본 자석을 학교에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는 너무도 욕심 난 나머지 그것을 훔쳐서 몰래 가져와 집 어딘가에 숨겨 놓고 매일 아무도 몰래 쳐다 만 보고 다시 보관한 그 자석이 내 양심에 딱 걸려서 내가 죄인임을 내 마음속에서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아담 조상의 죄가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난 죄인 일 수밖에 없다는 그 사실은 내게는 그리 큰 문제는 안됐었는데 그 자석이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던 1978년 10월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때처럼 추수가 끝났기에 저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성경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요한복음 1장 29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말씀이 내 가슴에 와 닿게 되었고 아, 내 죄를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다 지고 가셨구나 하며 깨닫게 되었으며 히브리서 9장 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라는 말씀 속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 어린 양이 예수님이시며 자기 피로 영원히 나의 죄를 없이 해 주심에 감사를 드릴 수 있었다. 이후 이 성경 말씀은 내가 주님 앞에 서는 말씀의 빛이 되어서 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는 말씀으로 가슴속에 새기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방과 후 나는 어머니를 예전처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었고 휴거가 된다면 나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음에 감사하고 평안함을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구원의 경험이 내 맘 속에 이뤄졌고 나는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주님의 보호 아래 양육 받으며 성장했다.

이 땅에서의 생활이 짧을 것이라고만 생각하며 살았었던 지난날 그 시간이 벌써 30여 년을 훌쩍 넘겨 버렸다. 주님의 은혜를 일찍 알았기에 주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을 했었더라면 벌써 장성한 사람이 되어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을 터인데 아직도 난 그 많은 세월 동안 성장이 멈춰버린 병처럼 어린아이의 모습이 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름 신앙생활을 한답시고 머물렀던 교회와 모임회사 그것이 다 인 줄로만 알고 생활했던 시간들, 그리고 어려움 속에 빠져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이 없음에 한탄도 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육신의 그것에 목을 매며 살아오기에 급급했던 시간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 아득했던 지난날의 삶이 내가 살아온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살 수 없었던 시간들이었는데 이 땅 위에 살아가고 있음이 어떤 힘의 작용이 있음을 직감 할 수 있었다. 몇 년째 아무 말씀의 공급도 없이 살아가는 내 모습 속에서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자녀들의 성장에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함이 말씀을 사모하게 되었고 절실함의 기도가 주님께서 우리 가족을 아하바 침례교회로 인도해주신 것을 알았다.
이제야 다시 한 번 주님의 참 사랑을 발견하고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항상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리고 내가 느끼지 못했던 그 긴긴 시간 속에서도 주님은 나를 지켜보고 기다리고 계셨음을 알게 되었다. 어렵게 찾은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마지막 기회의 사랑이라 생각하며 주님의 말씀을 좆아 실족치 않도록 내 마음을 가다듬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은 내 안에, 나는 주님 안에서 주님이 내 안에서 사시도록 비껴서는 삶이 되도록 주님 따라 살고자 하며 하나님께서 늘 보고 계심을 항상 생각하며 매 순간을 맡겨 드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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